3월 주일 대표기도문, 종려주일,
3월 종려주일, 묵상과 기도
종려주일 대표기도문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2026년 3월 다섯째 주일, 종려주일 아침에 저희를 주의 전으로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일 아침이면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를 꼭 쥐고, 마음 한켠 설레며 교회 마당을 들어서던 그 시절처럼, 오늘도 저희의 발걸음을 붙드셔서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변치 아니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오니,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임재하여 주시고, 드리는 예배를 향기로운 제사로 받아 주옵소서.
창조주 하나님, 저희의 마음속에 있는 거짓된 것들과 악한 것들과 가식적인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겉모습은 경건한 척 하였으나 속은 메말라 있었고, 입술은 “주여”를 부르면서도 삶은 세상의 속도에 끌려가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쁘다는 말로 사랑을 미루었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도를 접었으며,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죄를 가볍게 여겼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성령이여 오셔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고 순결한 심령을 부어 주셔서, 오늘 이 예배가 마음을 치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씻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루살렘 성문으로 겸손히 들어오시는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외쳤던 그 장면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 우리도 그 무리처럼 순간의 흥분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길까지 끝내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왕으로 모신다 말하면서도, 정작 내 뜻이 꺾일 때면 서운해하고 뒤로 물러섰던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겉옷을 길에 펴던 순전함은 어디로 가고, 계산기 두드리듯 손익을 따지는 마음만 남아 있지 않도록, 오늘 다시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종려주일의 환호가 곧 고난주간의 침묵으로 이어짐을 압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두려워하여 믿음을 흩뜨리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도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시고,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게 하옵소서. 교회가 높아지려는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세상 가운데 조용히 자신을 녹이는 소금이 되게 하시며, 어둠을 향해 따뜻하게 비추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호산나”를 입술로만 외치지 않게 하시고, 가정과 일터와 학교와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기도가 살아나게 하시며, 말씀 앞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옛날처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찬양을 되감아 들으며 은혜를 사모하던 마음, 주일 저녁예배까지 지키며 “주님 한 번만 더”를 외치던 갈급함이, 단지 추억으로만 남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은 더 빠르고 더 화려해졌지만, 교회는 더 단순한 복음으로, 더 깊은 사랑으로, 더 진실한 눈물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직분자들에게 겸손을 주시고, 섬기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시며, 모든 성도에게 서로를 용납하는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하나님, 연약한 자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병상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마음이 상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부어 주옵소서. 경제의 무게로 한숨 쉬는 가정들, 관계의 깨어짐으로 눈물 흘리는 부부와 자녀들, 미래가 막막하여 길을 잃은 청년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입성하신 예루살렘처럼, 우리의 가정과 마음에도 주님이 들어오시게 하옵소서. 문을 열게 하시고, 자리도 내어드리게 하시고, 주님이 주인 되시는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도 주께서 붙들어 주옵소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시대에 교회가 미움의 언어를 따라가지 않게 하시고, 화평의 길을 열게 하옵소서. 정의가 무너진 곳에 공의를 세우게 하시고, 약한 이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를 지켜 주셔서 진리보다 유행이 앞서는 시대 속에서도 말씀의 기준으로 서게 하시고, 믿음의 어른들이 본이 되게 하옵소서.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과 사역자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종려나무 가지의 환호가 아니라 십자가의 순종으로 주님을 따르는 길에 끝까지 서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말씀을 선포하실 목사님께 성령의 권능을 덧입혀 주옵소서. 입술을 주장하셔서 기록된 말씀의 능력이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듣는 우리 마음이 찔리고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우리가 예배당 문을 나서며 은혜를 흘려보내지 않게 하시고, 한 주간의 삶 속에서 종려주일의 고백을 지키게 하옵소서. 세상은 다른 왕들을 자꾸 세우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게 하시고, 환호만 남기지 말고 십자가까지 따르는 제자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종려주일 묵상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9, 개역개정)
종려주일의 길 위에는 두 가지 외침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는 찬양의 외침, “호산나!”이고, 다른 하나는 간구의 외침, “지금 구원하소서!”입니다. ‘호산나’는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본래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절박한 기도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길가의 군중은 흥분만 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무게를 끌어안고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메시아를 고백합니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약속의 왕이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의 기대를 이용해 높아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군마가 아니라 겸손한 나귀를 타고 들어오십니다. 세상 왕들의 입성처럼 힘을 과시하며 들어오는 길이 아니라, 낮아짐으로 들어오시는 길입니다. 군중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환영하지만, 예수님이 오시는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군중이 기대한 구원은 대개 ‘당장 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이었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억압, 경제적 고단함, 삶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원 말입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구원은 그보다 더 깊습니다. 죄와 죽음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구원, 십자가를 통과하여 부활로 완성되는 구원입니다.
종려주일은 그래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떤 왕으로 원하고 있는가. 내 계획을 돕는 왕, 내 기분을 맞춰주는 왕, 내 요구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왕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향하실 때 우리의 찬양은 쉽게 식어 버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환호는 며칠 지나지 않아 차가운 침묵과 적대의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군중의 변덕만을 탓하기 전에, 우리 안에도 같은 흔들림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기대대로 움직이실 때는 “호산나”를 외치다가, 예수님이 내 뜻을 꺾고 회개를 요구하실 때는 마음이 멀어지는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얕은 기대를 아시면서도, 그 길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환호가 불완전해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도, 예수님은 끝까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분은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살리기 위해 들어오십니다. 종려주일의 길은 ‘인기’의 길이 아니라 ‘구원’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초대를 주십니다. “나를 따르라.” 환호의 순간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에서도 따르라는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호산나”는 두 겹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정말로 “주님,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진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만 바꾸는 구원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바꾸는 구원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맞이하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삶에 들어오실 때, 내 왕좌를 내어드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고집과 교만을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겉옷을 길에 펴는 행위처럼, 내 자존심과 내 계산을 주님 앞에 펼쳐 놓는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의 문입니다. 환호에서 침묵으로, 흥분에서 묵상으로, 구경에서 동행으로 옮겨가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찬양이 내일의 순종이 되게 하십시오. 오늘의 “호산나”가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 뜻대로”로 이어지게 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종려주일의 참뜻을 붙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구원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드리는 “호산나”는,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신 주님의 사랑을 알아보는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