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 연습 전 기도

 성가대가 연습을 시작하기  전 기도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시간 저희를 찬양의 자리로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수많은 소리와 분주함 속에서 저희를 구별하시고, 노래로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특권을 맡겨 주심을 감사와 찬송으로 올려드립니다. 주님, 저희는 고백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때로는 소리와 기술에 머물렀고, 연습이 목적이 되어 예배의 마음을 잃어버렸던 순간들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에게 들리기 위한 소리, 완성도를 향한 조급함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흐려졌던 저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연습의 시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예배의 연장이 되게 하시고, 노래를 맞추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맞추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의 입술보다 먼저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고, 음정보다 먼저 믿음이 하나 되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이 찬양의 참된 인도자가 되어 주옵소서. 저희의 호흡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박자와 리듬 위에 주님의 질서를 세워 주옵소서. 각자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그 중심에 주님의 뜻과 평안이 흐르게 하옵소서. 높은 소리나 낮은 소리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한 마음이 울려 퍼지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연습 가운데 저희의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비교하는 마음, 서운함, 피곤함,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서로를 세워 주고 덮어 주며 기다려 주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연습 중에 나오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사랑과 절제가 있게 하옵소서. 저희가 부를 찬양의 가사 하나하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먼저 그 말씀이 저희의 심령에 새겨지게 하시고, 고백하지 못한 내용을 노래하지 않게 하시며, 삶으로 부인하는 찬양을 입술로만 올려드리지 않게 하옵소서. 찬양하기 전에 먼저 순종하게 하시고, 노래하기 전에 먼저 회개하게 하옵소서. 주님, 이 연습을 통해 저희를 빚어 주옵소서. 음악적으로도 자라게 하시되, 무엇보다 믿음과 인격 안에...

성경 읽을 때 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시간 저를 말씀 앞으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분주한 하루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제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자 합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제 영과 혼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사오니,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고백하옵나니 제 마음이 늘 준비되어 있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성경을 펼치면서도 여전히 제 생각과 염려, 판단과 고집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보다, 제 경험을 확인하고 제 생각을 정당화하려 했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배우는 자의 자리, 듣는 자의 자리로 저를 앉혀 주옵소서. 성령 하나님, 이 말씀의 참 저자이신 주님께서 제 안에 친히 역사하여 주옵소서. 제 지혜와 이해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없사오니,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말씀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 읽는 글자가 정보로 머무르지 않고, 제 심령을 찌르고 새롭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제가 읽는 이 말씀이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현재적인 음성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로, 비평하는 자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로 말씀 앞에 서게 하옵소서. 말씀이 저를 평가하게 하시고, 말씀이 제 삶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말씀 속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하옵소서. 거룩하심과 신실하심, 공의와 자비, 인내와 사랑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는 마음이 제 안에 자라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읽을수록 하나님이 더 커지고, 저는 더 작아지게 하옵소서. 주님, 이 말씀을 통해 제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옵소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디서 돌이켜야 하는지를 말씀으로 분별하게 하옵소서. 단지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살아내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씀이 제 발에 등이요, 제 길에 빛이 되게 하옵소서...

사업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성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성도를 위하여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숨조차 깊이 쉬기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이 성도가 끝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숫자와 계산, 채무와 책임,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밤마다 밀려오는 걱정과 두려움,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고 홀로 삼켜야 했던 한숨과 눈물을 주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임재로 이 성도의 마음을 덮어 주옵소서. 주님, 이 성도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과 정체성, 관계와 미래에까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음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사업의 실패와 매출의 감소, 약속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이라 정죄하며 괴로워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이 성도를 정죄하지 마옵소서. 성도의 가치는 성과로 결정되지 않고, 수익으로 평가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이미 존귀한 자녀임을 다시 깨닫게 하옵소서. 실패한 사업가가 아니라, 여전히 주님의 손에 붙들린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성도의 마음을 먼저 붙들어 주옵소서. 경제적 어려움이 마음을 삼켜 믿음까지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게 하옵소서. 눈앞의 숫자와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 주님께서 여전히 길을 여시는 분이심을 믿게 하옵소서. 당장의 해결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께서 이 성도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확신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순간에도 주님을 원망하기보다 주님께 매달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 성도의 현실적인 필요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감당해야 할 비용과 채무, 직원과 가족에 대한 책임,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지서와 마감의 압박 속에서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길이 되시고 문이 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막힌 것처...

믿음이 약한 성도를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가정을 심방하며 주님 앞에 머리 숙입니다. 주님께서 아시지 못하는 눈물은 없고, 주님께서 헤아리지 못하는 한숨은 없으며, 주님께서 외면하시는 밤은 없음을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이 약해져 흔들리는 성도의 마음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말보다 먼저 성령의 위로가 임하게 하시고, 사람의 격려보다 더 깊은 하늘의 평강이 이 집 안에 흐르게 하옵소서. 주님, 이 성도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듯하지만 속은 무너져 있고, 기도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으며, 말씀을 펼쳐도 마음이 붙들리지 않는 날들이 있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사실이 죄책감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던 시간도 있었음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 이 성도를 정죄하지 마옵소서. 주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리라” 하신 약속대로, 상한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주옵소서. 꺼져가는 심지를 다시 살리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믿음이 약해진 자리가 곧 주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믿음이 강해야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함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주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는 복음의 진리를 이 성도의 영혼에 다시 새겨 주옵소서. 주님, 이 성도가 자기 자신을 붙드는 손을 내려놓고, 주님께 붙들리는 은혜를 다시 경험하게 하옵소서. 믿음이란 내 마음의 힘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신실하심 위에 서는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흔들리는 마음 위에도 주님의 언약이 흔들리지 않음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 이 성도의 마음 속 두려움과 불안을 다루어 주옵소서.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찾아오는 공포, 관계 속에서의 상처, 내면의 자기비난, 과거의 후회가 이 성도의 영혼을 눌러왔다면, 주님의 평강으로 그 무게를 덜어 주옵소서. 하나님, 이 성도의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생각이 끝없이 달려가며 밤을...

기도와 성화의 관계

 기도와 성화의 관계 기도와 성화의 관계를 성경신학적으로 풀어 보려고합니다. 핵심은 하나입니다. 기도는 성화를 ‘얻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성화가 ‘진행되는 자리’이며 성화의 ‘호흡’입니다.  성화는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구원의 과정 안에 있고, 기도는 그 과정에 참여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입니다. 성경신학적으로는, 창조–타락–언약–그리스도–성령–교회–새 창조라는 큰 흐름 속에서 기도와 성화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아야 합니다. 먼저 성화가 무엇인지 정리해야 합니다.  성화는 흔히 “도덕적으로 더 착해지는 것”으로 축소되지만, 성경의 중심은 더 깊습니다. 성화는 하나님께 구별되어(거룩)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삶의 변형입니다. 그것은 단지 행동의 교정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욕망, 사랑, 두려움, 소망)이 하나님께로 재정렬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성화는 단발성 결단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점진적이고, 때로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긴 여정입니다. 이 여정에서 기도가 왜 핵심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을 ‘법정적 선언’(칭의)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롭다 하신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실제 삶을 새롭게 하십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고 말합니다. 성화는 내가 시작한 자기 개선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의 전개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인간이 ‘구경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인간이 믿음으로 응답하며 동참하는 통로입니다.  성화가 은혜로 시작되듯, 기도도 은혜로 시작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기도하게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진술입니다(로마서 8장,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흐름). 성경신학적으로 보...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없다는 성격적 원리

기도하면 모두 응답  받는다 사실일까?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신학적으로는 매우 정교하게 다뤄야 할 주제입니다. “기도하면 모두 이루어진다”는 말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은 ‘아무 기도나 다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안에서 드려진 기도는 반드시 성취된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이 긴장 속에 성경적 답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알아봅시다. 1. “구하면 받는다”는 말씀은 실제로 성경에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말씀부터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 이 말씀만 보면 “기도하면 다 된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기도의 능력을 축소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실제로 하나님의 행동을 불러오는 통로입니다. 이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조건을 제거해 버리는 해석입니다. --- 2. 성경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앞에 전제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든지”라는 표현은 무제한적 허가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 핵심은 순서입니다. 기도 → 응답이 아닙니다. 거함 → 기도 → 성취입니다. 즉, 기도의 성취는 –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 –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상태 이 두 가지가 전제된 상태에서 약속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를 자동판매기처럼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도는 관계이며, 관계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 3. “이루어진다”는 말의 성경적 의미를 바로 잡아...

골방기도란 무엇인가

먼저 질문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골방기도란 무엇입니까? 많은 성도들이 골방기도를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것”, “새벽에 숨어서 오래 기도하는 것”, 혹은 “영적으로 높은 단계의 기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골방기도는 기도의 장소 이전에 기도의 통치 구조, 다시 말해 누가 나의 기도를 지배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자들을 경계하시며,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대조하시는 것은 공적 기도와 사적 기도가 아니라, 사람의 시선 아래 있는 기도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기도입니다. 1. 골방기도는 ‘은밀함’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골방’은 타메이온으로, 집 안쪽 깊숙한 저장 공간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장소가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 공간이라는 데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굳이 “문을 닫으라”고 하셨을까요? 이 문은 단순히 공간의 문이 아니라, 사람의 평가, 인정, 비교, 종교적 성과주의를 차단하는 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 사회에서 기도는 신앙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경건함을 증명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즉,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사람을 향해 휘어질 위험이 늘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되돌리십니다. 골방기도란, 기도의 청중을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확정하는 행위입니다. --- 2. 골방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은폐된 방식’을 닮은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경에서 언제나 요란하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씨앗처럼, 누룩처럼, 겨자씨처럼 시작됩니다. 작고, 느리고,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골방기도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눈에 띄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며, 칭찬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