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일 대표기도문, 묵상과 기도
3월 둘째 주일 대표기도문,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주일 낮 대표기도문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립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것부터, 오늘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신 것까지 모두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영광 가운데 우리를 붙드시고 통치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이 시간 예배하는 처소 가운데 임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흐르게 하옵소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는 먼저 회개합니다.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고도 당연한 듯 살아온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라가 부강해지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던 우리의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개인의 경건이 약해진 것뿐 아니라, 공동체의 공적 책임이 흐려진 것도 주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 다시 복음의 자리로 돌이키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는 민족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나라와 민족을 세우시고 또한 파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이 땅에 복음을 허락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암울했던 시절, 예배할 처소도, 배움의 길도 부족했던 때에 주께서는 선교사들의 눈물과 기도를 통하여 복음의 씨앗을 심으셨고, 한국 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과거의 무지와 묶임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말씀의 빛으로 길을 내셨습니다. 그 은혜로 이 나라가 일어나게 하셨고, 복음을 전하는 나라로 세워 주셨습니다. 선교의 문을 열어 주시고 수많은 교회와 예배처를 세워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지금 이 나라가 점점 하나님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물질과 성공, 쾌락과 자기중심의 문화가 진리보다 앞서고, 정의와 공의가 흔들리는 자리마다 분열과 냉소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교회가 먼저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소금으로 썩지 않게 하시며,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의 선함과 정직과 사랑으로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고, 가정과 일터와 학교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특별히 북한을 위해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땅이 어찌하여 이처럼 어두움 가운데 갇혔는지 탄식하며 주 앞에 나아갑니다. 북한의 동토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권력의 우상이 무너지게 하시고, 억압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건져 주옵소서. 굶주림과 인권의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긍휼을 베푸시고, 닫힌 문이 열리게 하시며, 복음의 빛이 다시 비치게 하옵소서. 지하에 숨은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그들의 믿음이 꺾이지 않게 하시며, 주께서 정하신 때에 참된 자유와 예배의 회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념과 체제의 벽이 무너지고, 전쟁이 아닌 평화로, 적대가 아닌 화해로 나아가게 하시며, 주의 때에 주께서 이루시는 평화의 통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찢기고 파괴된 교회들이 다시 일어서고, 복음이 강물처럼 흐르는 날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권세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그들이 깨닫게 하시고, 스스로를 백성의 심부름꾼으로 알게 하옵소서. 대통령에게 지혜와 분별을 더하셔서 사람의 욕망과 당파적 유익을 좇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며 나라를 섬기게 하옵소서. 국회의원들과 각 부처의 책임자들에게도 겸손한 마음을 주셔서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국민의 아픔을 살피게 하시고, 약한 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마다 정직과 책임이 살아나게 하시고, 거짓과 선동이 힘을 잃게 하옵소서.
검찰과 경찰, 사법부와 공권력 기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정치 권력이나 여론에 휘둘려 공의를 굽히지 않게 하시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책임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법이 사람을 억누르고 죽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질서를 세우고 약자를 살리는 울타리가 되게 하시며, 공의로 판단하되 긍휼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돈과 권력이 법 위에 서지 못하게 하시고, 진실이 숨겨지지 않게 하시며, 공정과 상식이 이 땅에 다시 세워지게 하옵소서. 주님, 이 나라가 선지자의 외침대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를 붙들어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교회 되게 하시고, 시대의 고통 앞에 침묵하지 않게 하시며, 복음의 진리 위에서 담대히 서게 하옵소서.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화평을 전하는 입술이 되게 하시고, 분열을 키우는 영이 아니라 회복과 중보의 영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 나라의 소망이 되게 하시며, 믿음의 사람으로 길러 주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들고 서실 목사님께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교회가 기도로 시대를 품게 하시며, 각 성도에게 회개와 결단을 주는 능력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듣는 우리 모두가 말씀에 순종하여, 한 주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고, 평화를 이루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 묵상글 — 시편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편은 개인의 신앙을 넘어, 열방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선포하는 왕의 시입니다. 인간의 권력은 스스로 굳건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의 마지막 권면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과 지도자들이 반드시 붙들어야 할 영적 현실입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 앞에 엎드려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입맞춤은 사랑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종과 충성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왕 앞에서 우리의 오만을 내려놓고, 그분의 통치를 인정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시대를 향해 날카롭게 질문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충성을 바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라가 힘이 있다고 자랑할 때, 경제가 안정되었다고 안심할 때, 혹은 내 편의 승리가 정의인 듯 착각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 없이도 된다”는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경고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길에서 망하리니.” 여기서 ‘길’은 단지 개인의 인생길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선택하는 방향, 민족이 걷는 노정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길은 겉으로 화려해 보여도 결국 파괴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변덕이 아니라, 악과 거짓을 그냥 두지 않으시는 거룩한 공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경고의 끝은 두려움이 아니라 복음으로 마무리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참된 안전은 제도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는 데 있습니다. 피한다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귀환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려는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먼저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분노와 혐오의 언어로 시대를 해석하기보다, 무릎으로 시대를 붙들어야 합니다. 정치의 소음 속에서 교회가 잃기 쉬운 것은 ‘복음의 중심’입니다. 시편 2편은 우리를 다시 중심으로 부릅니다. 메시아께 입맞추라, 그분께 돌아오라, 그분께 피하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붙듭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민족이 복이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나라가 살고,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공동체가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단지 형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 입맞추는” 순종이 이 땅에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