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부활주일)

4월 첫주 묵상과 기도

4월 첫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부활주일)

생명의 하나님 아버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4월의 첫 주일,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고 부활의 소망을 붙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기쁘고 복된 주님의 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경배하오니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성령으로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메마른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 영혼을 일으켜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한 주간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생명의 길을 걷기 원하셨으나 우리는 종종 죄의 유혹에 넘어져 죽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혀 사랑하기보다 비교했고, 시기와 질투로 마음을 어둡게 했으며, 용서보다 미움을 택하고 인내보다 불평을 앞세웠습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믿는다 고백하면서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쉽게 낙심하며 부활의 능력을 의심했던 연약함도 고백합니다. 주님, 보혈의 피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다시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속 숨은 죄까지 비추어 주셔서 정직한 회개로 돌이키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찬양하는 새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능력의 주님, 부활은 단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일으키셨사오니, 그 능력이 우리 안에도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하신 말씀처럼, 우리 안의 의심을 물리쳐 주시고 믿음을 굳게 세워 주옵소서. 절망이 소망을 삼키지 못하게 하시고, 낙심이 기도를 빼앗지 못하게 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부활의 능력이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히 임하게 하옵소서. 죽었던 심령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예배가 다시 뜨거워지게 하시며, 말씀을 사모하는 갈급함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상처로 굳어진 마음이 녹게 하시고, 갈등으로 멀어진 관계가 화해와 용서로 다시 이어지게 하옵소서.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서게 하시되, 말로만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실제로 복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열어 주셔서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한 영혼을 귀히 여기며 품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가정 가운데 임하게 하옵소서.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게 하시고, 부부가 서로를 세워 주게 하시며, 부모와 자녀가 주 안에서 마음을 나누게 하옵소서. 불신과 의심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가 일어나 한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가정 되게 하옵소서. 병든 가족을 돌보느라 지친 이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눌린 가정에 필요한 길을 열어 주옵소서. 우리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게 하시고, 식탁과 잠자리와 일상의 자리마다 부활의 감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부활의 능력이 성도들의 일터와 삶의 현장에도 넘치게 하옵소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정직과 성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직장과 사업의 문제로 낙심하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막힌 길 앞에서 하늘의 길을 보게 하옵소서. 기쁨과 소망이 흐르는 일터가 되게 하시며, 어려움 중에도 서로 협력하여 선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나라와 민족 위에도 부활의 소망을 부어 주옵소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분열이 아닌 연합을, 다툼이 아닌 화해를, 미움이 아닌 평화를 선택하게 하옵소서. 지도자들에게는 두려운 책임의 마음과 섬김의 자세를 주셔서, 권력을 자기 유익에 쓰지 않고 국민의 아픔을 돌보게 하옵소서. 특별히 북녘의 동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억압과 두려움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닫힌 문이 열려 복음의 빛이 다시 비치게 하옵소서. 이 민족을 진리로 하나 되게 하시고 사랑으로 연합하게 하시며, 주께서 정하신 때에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이 땅의 청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노력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주님, 그들에게 부활의 능력을 부어 주셔서 다시 꿈과 소망을 붙들게 하옵소서. 자포자기와 절망의 생각에서 건져 주시고, 생명을 귀히 여기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을 정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전하실 주의 사자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옵소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능력 있게 선포되게 하시고, 듣는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응답하여 한 주간 부활의 사람답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선택이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시고, 부활의 기쁨이 우리의 표정과 관계와 삶의 태도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 고린도전서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도 의심이 들어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단지 감정의 고조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고통, 반복되는 실패, 눈앞의 죽음과 상실은 마음을 쉽게 흔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묻습니다. “어찌하여… 부활이 없다 하느냐.” 이 질문은 정죄만이 아니라, 복음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라는 초대입니다.

부활을 부정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뿌리부터 흔들립니다. 십자가가 “좋은 희생”으로만 남고, 죄 사함의 권세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끝으로 두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 “마지막 원수”를 무너뜨리셨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선언입니다. “죄가 끝이 아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절망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안에는 자꾸 “부활이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까요? 많은 경우 우리는 부활을 ‘내 현실을 즉시 바꾸는 기적’으로만 기대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대로이고, 문제는 남아 있으며, 기도했는데도 통증이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묻습니다. “정말 살아 계신가?” 그러나 부활의 능력은 현실을 회피시키는 마술이 아니라, 현실을 통과하게 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도 부활로 가는 길에서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건너뛰게 하시기보다, 고난 속에서 우리를 붙드시고 결국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의 능력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언젠가 천국 간다”는 위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다른 선택을 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미움이 올라올 때 용서를 선택할 수 있는 힘, 불의가 유혹할 때 정직을 붙들 힘, 무기력이 덮칠 때 다시 일어설 힘, 절망이 문을 닫으려 할 때 기도를 이어 갈 힘—이 힘이 부활의 생명에서 나옵니다.

바울의 질문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파되었거늘” 우리는 왜 여전히 죽음의 언어로 말하고, 패배의 계산으로 결정하며, 두려움의 습관을 따라 사는가. 부활 신앙은 ‘사실’에 대한 동의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의 전환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끝을 절망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자신을 폐기하지 않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되, 죄에 묶여 자기 자신을 영원히 정죄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다시 시작”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4월의 첫 주일,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다시 서야 합니다. 내 마음에 자리한 “부활이 없다”는 속삭임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복음의 중심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의 전통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오늘도 우리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나는 흔들리지만 주님의 부활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주님의 생명은 강합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하루를 바꾸고, 한 주의 태도를 바꾸고,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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