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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 설교] 사사기 19장 묵상과 강해

테필라 202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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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 첩의 비극 속에 비추는 가정의 거룩함

사사기 19장은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도덕과 질서가 무너진 시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이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는, 가정이 하나님 말씀을 떠날 때 어떤 고통과 혼란이 오는지를 함께 성찰하기 위함입니다. 말씀 없는 가정은 사랑도, 정의도, 책임도 사라진다는 것을 본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랑, 무책임한 가정의 민낯

본문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더라"(1절)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정치 체계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무너졌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 절망적인 시대 속에 한 레위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습니다. 이 ‘첩’(히브리어로는 ‘필레갓’, פִּילֶגֶשׁ)은 법적으로 정식 아내가 아닌 여성을 뜻합니다. 즉, 정식 결혼의 언약 대신 편의적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레위인의 삶에서 우리는 책임 없는 사랑의 형태를 봅니다. 첩이 행음하고 집을 나갔을 때 그는 분노하기보다, 기분이 풀리자 다시 데리러 갑니다(3절). 그의 마음에는 진정한 언약적 사랑이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병리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실한 시대는 부부 간의 언약도, 부모 자식 간의 언약도 쉽게 깨어집니다. 하나님 없는 시대의 사랑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본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정은 존재하지만, 진실한 사랑과 책임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바로 ‘언약의 책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이 가정에 뿌리내릴 때, 자녀는 안정과 방향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의 감정과 이익을 우선할 때, 자녀는 그 가정 안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합니다.

손님 대접의 가면 뒤에 감춰진 무관심과 폭력

레위인은 첩을 데리고 베들레헴에서 출발하여 에브라임으로 향합니다. 여정 중에 기브아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하룻밤 묵게 됩니다. 길거리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한 노인이 잠자리를 내어주지만, 그 밤에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성읍의 불량배들이 찾아와 “너의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22절)라고 외칩니다. 이는 창세기 19장 소돔의 이야기와 구조가 매우 흡사합니다. 사사기의 기브아는 소돔보다 더 타락한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성적 타락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놀라운 것은 이 위기 앞에서 레위인이 자신의 첩을 내어준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첩을 그들에게 끌어내매”(25절). 레위인은 제사장 계열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속한 자였지만, 위기 앞에서 자신의 동행자를 지킬 책임을 저버리고 생명의 위험에 노출시킵니다.

가정 안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안전’입니다. 정서적, 영적, 신체적 보호는 가정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은 시대는 그 책임을 방기합니다. 레위인은 외형상 사랑하는 여인을 데리러 베들레헴까지 갔지만, 정작 그녀의 생명이 위협당할 때는 아무런 방패도 되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은 부모로서 우리가 자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자녀는 말로만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보호받아야 하는 생명입니다. 우리 가정은 그 생명을 품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본문은 묻고 있습니다.

도구로 전락한 생명과 상실된 정의

다음 날, 레위인은 문을 열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첩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녀는 밤새 성폭행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레위인은 말없이 그녀의 시신을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는 그 여인을 열두 토막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냅니다(29절). 이는 단순한 충격요법이 아니라, 한 생명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도구화하는 극단적 방식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레위인이 첩을 단 한 번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합니다. 처음엔 감정의 도구, 그다음엔 위기 회피의 방패, 마지막엔 정치적 분노를 일으키는 수단이 됩니다. 사랑도 책임도 없고, 죽음조차도 하나의 수단으로 쓰이는 이 장면은 인간의 탈신앙이 얼마나 깊은 잔혹함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단지 양육하는 것을 넘어, 그 생명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며 대하는 일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 속에 지음받았다는 인식을 잃는 순간, 우리는 그 생명을 조건적으로 판단하고, 상황에 따라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말하고 대하느냐는 결국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녀는 선물이며, 사명이자 은혜입니다.

결론

사사기 19장은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 없는 시대에 얼마나 무섭게 번지는지를 보여주는 실존적 고발입니다. 정치도, 가정도, 신앙도 모두 기능은 있지만 영혼은 없습니다. 왕 없는 시대, 하나님 없는 가정은 가장 비참한 형태로 무너집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이었지만 말씀의 사람이 아니었고, 첩은 여인이었지만 존중받지 못했으며, 이스라엘은 민족이었지만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우리 가정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 자녀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책임을 동반하고 있는가? 말씀 없는 시대에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말씀을 떠나 정의는 사라지고, 관계는 깨어지고, 생명은 도구화됩니다. 그렇기에 부모 된 우리는 말씀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살아갈 시대가 사사기의 재현이 되지 않도록,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야 합니다.

말씀이 살아 있는 가정, 생명이 존중받는 공동체, 사랑이 언약으로 이어지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실 때, 비로소 가정은 보호의 울타리가 되고, 부모의 사랑은 자녀를 살리는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그 시작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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