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장 묵상과 강해
가짜 왕의 비극: 아비멜렉과 세겜의 파멸
사사기 9장은 사사기의 전체 흐름 가운데 이례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들에 대한 언급 없이, 아비멜렉이라는 인물이 세겜에서 왕이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쥐려는 자와, 그 권력을 쉽게 허락한 자들이 맞이하게 되는 파국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깊이 보여줍니다.
아비멜렉의 야망: 신적 부르심 없는 왕의 탄생
아비멜렉은 기드온(여룹바알)의 아들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세겜 사람이며 첩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방적 배경을 가진 존재로, 그의 태생 자체가 이스라엘 안에서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사로 세움 받은 적도 없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드온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높이며, 세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려 합니다.
아비멜렉은 세겜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 명의 아들들을 따르겠느냐, 아니면 너희와 같은 혈육인 나를 따르겠느냐"(삿 9:2). 여기서 그는 혈연을 내세워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권력의 정당화 방식이었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부적절한 사고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과 기름부으심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말에 동조하여,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세겔을 내어줍니다(삿 9:4). 이는 단순한 정치적 거래가 아니라, 세겜이 바알의 영향력 아래에서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비멜렉은 이 돈으로 방탕하고 무법한 자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방식 권력은 피를 흘리는 방식으로 강화됩니다. 그는 이복형제 70인을 한 바위 위에서 모두 죽입니다. "한 바위 위에서"라는 표현은 제사의 제단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곧 아비멜렉이 형제들을 제물로 삼아 권력의 제단에 바쳤다는 아이러니한 장면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아비멜렉의 왕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피로 세워진 인간 중심의 권력입니다. 히브리어로 '왕'을 의미하는 "멜렉"(מֶלֶךְ)이라는 단어는 아비멜렉(אֲבִימֶלֶךְ, "내 아버지는 왕이다")이라는 이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 이름과 정반대로, 아버지의 유산을 파괴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하나님 없는 통치는 이름만 그럴싸할 뿐, 결국 파멸로 이어지는 허상임을 보여줍니다.
요담의 비유: 하나님의 진리로 외치는 예언자의 목소리
형제들의 학살을 피한 요담은 그리심 산 위에서 사람들에게 비유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나무들이 왕을 세우려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각각 자신들의 역할에 만족하며 왕이 되기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나섭니다(삿 9:8-15).
이 비유는 너무도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들은 자신의 열매, 즉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을 따라 충실히 살아갑니다. 반면, 아무 유익도 없고 그늘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가시나무는 왕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을 내리겠다고 위협합니다. 가시나무는 히브리어로 "아탈"(אָטָד)이며, 쓸모없고 파괴적인 존재입니다. 아비멜렉은 바로 이 가시나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 순간부터 공동체는 파괴와 불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담은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라면, 그가 너희를 기쁘게 할 것이요, 아니라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을 삼키고, 세겜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삼키게 될 것이다"(삿 9:19-20).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선포입니다. 세상 권력은 당장 그럴싸해 보여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반드시 붕괴합니다. 이처럼 예언자는 진리의 말씀을 외칩니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거짓과 폭력이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나,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분열과 파멸의 결말
세겜과 아비멜렉은 처음에는 서로 공모하여 권력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십니다(삿 9:23). 히브리어로 '영'은 '루아흐'(רוּחַ)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역사적 도구로 자주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루아흐를 보내어 그들의 관계를 무너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 대한 충성에서 돌아서고, 새로운 지도자 가알을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허상의 지도자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의 마음대로 만든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 무의미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을 공격하고, 불을 질러 망대에 있는 사람들까지 죽입니다. 이는 요담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끝이 아닙니다. 아비멜렉은 다시 데베스라는 성읍을 공격하다가,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조각에 머리를 맞고 죽습니다.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그는 수치를 피하려고 자기 무기를 든 소년에게 "나를 찔러라"고 말하지만(삿 9:54), 결국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심판의 방식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하 11장, 다윗이 우리아를 죽게 할 때 언급되는 사건으로도 등장합니다. 이는 이후의 성경이 아비멜렉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9장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그가 자기 형제 칠십 명에게 행한 악을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시니,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삿 9:56-57).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인간이 왜곡하려 해도,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결론
사사기 9장은 한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타락이 어떻게 연결되어 심판에 이르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권력은 가시나무 왕과 같으며, 언젠가는 불을 내어 자신과 남을 모두 태우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야망, 세겜의 공모, 요담의 경고, 그리고 결국 이루어진 심판의 서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사회 가운데서도,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분의 뜻에 따라 세워진 것이 아니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요담처럼 진리를 말하는 자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 없는 가짜 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살아 있고, 그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거룩하고 두려운 것인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성경강해 > 구약강해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11장 묵상과 강해 (0) | 2025.04.02 |
---|---|
사사기 10장 묵상과 강해 (0) | 2025.04.02 |
사사기 8장 묵상과 강해 (0) | 2025.03.28 |
사사기 7장 묵상과 강해 (0) | 2025.03.28 |
사사기 6장 묵상과 강해 (0) | 2025.03.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