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설교, 사도행전 3:15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느니라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느니라
부활주일, 우리는 다시 한번 십자가와 빈 무덤 앞에 섭니다. 사도행전 3장 15절은 부활 사건의 신학적 중심을 날카롭게 꿰뚫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는 인간의 죄,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복음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후 회중에게 외친 이 선언은 지금 우리에게도 복음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이 한 문장은 인간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배척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생명의 주'로 번역된 헬라어는 archēgon tēs zōēs입니다. 이 단어 archēgos는 ‘시작자, 창시자, 선도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생명을 주신 분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자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너희가 그분을 죽였다." 이는 단순히 유대인들만을 향한 비난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의 죄가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인간의 죄, 그것이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이 고백이 없다면, 부활은 단지 한 기적 사건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어떤 자인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셨고, 그분의 손길은 병든 자를 회복시키셨으며, 그분의 마음은 죄인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분을 죽였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분을 제거하려 했던 인간의 죄는 결국 스스로 생명을 잃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삶,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뜻을 앞세우는 태도, 그것이 곧 생명의 주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주일은 단지 기쁨의 날이기 전에, 회개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죽였던 그 주님, 그러나 나를 살리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그분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느니라
본문의 후반부는 인간의 죄악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느니라." 이 선언은 단순한 부활의 사실 전달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인간이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죄가 죽음을 불렀으나, 하나님의 의는 생명을 회복시켰습니다.
여기서 "살리셨다"는 동사 ēgeiren은 헬라어 수동태 형태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분 자신의 의지나 인간의 바람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에 의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사건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사망 가운데 있던 예수님을 살리셨던 그 능력은 지금도 죽은 심령을 일으키시고, 절망한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끝이라고 여겼던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여십니다.
여기서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표현 역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한 죽음 이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는 죽음을 겪은 모든 인간이 반드시 직면할 부활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보증이며, 믿는 자마다 이 생명에 동참하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
본문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 부활의 사건은 단지 기념되어야 할 유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증거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교회는 부활을 기억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부활을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서 "증인"으로 번역된 헬라어 martyres는 단지 사건을 본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 사건을 삶으로 증거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뜻합니다. 순교자라는 말도 바로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즉,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삶 전체로 증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을 증언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죽음의 권세 앞에서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는 삶입니다. 또한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선택하며, 다른 이들을 살리는 말을 하고 행동하는 삶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언제나 생명의 편에 서 있습니다.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길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생명이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증언은 단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자리, 가정과 직장,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말투와 태도, 용서와 인내, 격려와 위로의 말들이 곧 부활의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는 고백의 실천입니다.
결론
사도행전 3장 15절은 단 한 절이지만, 복음의 전말을 담고 있습니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느니라." 이 말씀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 죽음과 생명, 절망과 소망을 대조하며 복음의 능력을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부활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 가운데 있었다 해도,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살리신 능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십니다. 우리가 어떤 실패 앞에 주저앉아 있어도, 하나님은 다시 일으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부활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생명의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죽였던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을 나누고, 소망을 전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명 안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제 우리 삶 전체가 이 부활의 증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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